성격 갑옷: 다자이 오사무와 에곤 실레

 문학과 예술은 인간의 고통을 가장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창(窓)입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과 에곤 실레의 그림 속에서 우리는 고통의 본질과 인간 존재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두 예술가는 각기 다른 표현 수단을 사용했지만, 그들이 던지는 질문은 같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가?”

이름의 혼란과 존재의 질문

『인간 실격』을 읽으며 느낀 첫 질문은 바로 주인공 ‘오바 요조’와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관계입니다. 자전적 소설로서 요조의 고통은 다자이의 삶을 반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를 ‘요조’라 불러야 할까요, 아니면 ‘다자이’라 칭해야 할까요? 이름에 얽힌 혼란 자체가 존재와 정체성에 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마흔을 넘겨서야 나는 나 자신을 정의할 바닥 공사를 마친 느낌입니다. 이 단단한 그라운드 위에 서서, 유년 시절 미처 만나지 못한 존재적 질문과 그때의 혼란을 돌아봅니다. 그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엔 어린 시절의 나는 너무 무지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조차도, “삶은 고통이다”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다자이의 요조는 바로 이 고통과 존재의 부조리 속에서 방황합니다. 그가 사람들 앞에서 유머와 가면을 쓰고, 속마음을 감추며 살아가는 모습은 사회적 부적응과 내적 불안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요조’가 “이제 너희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라고 선언할 때, 그 말은 우리 모두에게 하는 ‘소리없는 가르킴’일 수도 있습니다.

성격의 갑옷과 심리적 방어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는 인간이 어린 시절의 상처와 억압에 대응하기 위해 “성격 갑옷(Character Armor)”이라는 심리적 방어기제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이 갑옷은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지만, 동시에 진정한 자아와 감정적 자유를 막아 삶을 경직시키고 더 깊은 고통을 낳기도 합니다.

‘요조’의 성격 갑옷은 유머와 냉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는 인간관계에서 언제나 거리를 두고, 자신을 감추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결과로 그는 외로움과 절망에 갇혀 버립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삶과 문학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심리적 장벽을 쌓고, 그 안에서 무너지는 지를 목격합니다.

에곤 실레의 고통과 성격의 왜곡

‘에곤 실레’의 작품에서도 이 성격 갑옷의 개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날카로운 윤곽과 비틀린 형태를 지니며, 억눌린 감정과 욕망의 무게를 표현합니다. ‘실레’가 묘사한 손과 눈의 긴장된 모습은 그의 내면적 고뇌와 존재적 불안을 상징합니다. 그는 인간의 몸을 통해 심리적 억압과 욕망을 형상화하며, 삶과 죽음, 리비도(Libido)와 타나토스(Thanatos) 사이의 갈등을 드러냅니다.

‘실레’는 자신을 ‘영원한 아이’라 불렀습니다. 어머니와의 불안정한 애착 관계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의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그는 거리의 소녀와 정신병원 환자들에게서 고통을 포착하며, 그들의 몸을 통해 삶의 파괴적 본능을 묘사했습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심리적 방어의 한계를 넘어선 인간의 연약함과 상처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고통을 마주하는 예술의 힘

『인간 실격』과 실레의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바로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태도입니다. 두 예술가는 성격의 갑옷 속에서 방황하며, 그 갑옷의 무게와 억압이 인간을 얼마나 뒤틀리게 만드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들의 고통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진정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할 것인가?

라이히의 이론을 빌려보면, 다자이와 실레의 작품은 우리에게 성격 갑옷을 벗어던지는 용기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그 갑옷은 우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가두는 장치입니다. 그 갑옷을 벗는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와 인간의 본질을 마주하는 순간일 것입니다.

고통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구한 다자이 오사무와 에곤 실레.

그들의 예술은 우리에게 외로움과 불안이 얼마나 보편적이며, 동시에 극복해야 할 도전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성격 갑옷을 벗고 고통 속의 진실을 마주하는 여정.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첫걸음일지도 모릅니다.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