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예술과 양극성 장애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시회는 빈센트 반 고흐의 예술 세계를 깊이 있게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이었다. 이번 전시는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의 소장품을 포함해 그의 초기작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아우르며,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원화들도 선보였다.

예전에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을 방문한 적이 있어 큰 기대 없이 전시를 보았지만, 예상 외로 감명 깊었던 것은 그의 드로잉 작품들이었다. 일반적으로 반 고흐 하면 강렬한 색채의 유화를 떠올리지만, 그의 드로잉은 예술에 대한 깊은 연구와 노력이 집약된 작품들이다. 초기 데생에서는 외로움, 위로, 우정, 절망과 같은 감정들이 짙게 배어 있으며, 20대 후반의 고흐가 바라본 세상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대중들은 흔히 반 고흐를 ‘귀를 자른 미친 화가’라고 표현하지만, 정신질환과 감정 기복은 단순한 ‘광기’로 치부할 수 없는 복잡한 개념이다. 특히 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극단적인 감정 기복과 충동적인 행동이 반복되었으며, 이는 오늘날 양극성 장애(Bipolar Disorder)의 특성과 유사하다.

반 고흐의 삶을 이해하려면, 먼저 양극성 장애와 정신분열증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양극성 장애는 감정 기복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질환이다. 감정이 고양되는 조증(Mania)과 극단적으로 가라앉는 주요 우울 삽화(Major Depressive episode)이 2주 이상 지속되고, 조증 상태에서는 에너지가 넘치고 충동적이지만, 우울 상태에서는 무기력해지고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반 고흐가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다가도 깊은 절망에 빠졌던 모습은 전형적인 양극성 장애의 특징이다.

반면, 조현병(schizophrenia)은 감정 기복보다는 현실과의 괴리가 주요 증상이다. 환청이나 망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며, 사고 과정이 비논리적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감정이 둔해지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지는데, 이는 반 고흐와는 다른 특징이다. 그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했고, 동생 테오와도 깊은 유대감을 유지했다. 이는 조현병보다는 양극성 장애의 특성과 더 가깝다.

그이 이런 증상들의 원인은 어린 시절과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다. 고흐는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죽음의 그림자 아래 놓인 존재였다. 그는 태어나기 1년 전, 출생 중에 세상을 떠난 형과 같은 이름을 받았다. 부모가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는 어린 빈센트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무덤을 보며 자랐다. 이는 단순한 불길한 우연이 아니라, 그에게 자신이 이미 죽은 존재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환경이었다.
이러한 성장 환경은 그의 정체성 형성에 혼란을 가져왔고, 스스로를 부정하거나 증명하려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반 고흐는 창작에 대한 열정이 엄청났다. 그림을 그릴 때는 밥도 먹지 않고 밤을 새우며 작업을 했고, 마치 “에너지가 폭발하는 듯한 상태”를 보였다. 그의 편지 속에도 이런 조증 상태가 잘 드러난다.

“너는 상상하기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사실 돈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음식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어. 단식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야. 그래서 바로 모델을 찾으러 나갔고, 돈이 떨어질 때까지 일을 계속했어.”

그의 삶을 살펴보면, 극도의 열정과 깊은 절망을 오가는 감정 기복이 두드러진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잘 드러난다.

이는 양극성 장애의 ‘조증(Mania) 상태’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는 굶주림도 잊을 만큼 창작에 몰두하며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었지만, 이후 극심한 우울에 빠지는 패턴을 반복했다.

고흐는 극단적인 충동적 행동을 보였는데, 대표적인 사건이 자신의 귀를 자른 일이다. 이 사건은 그의 감정 기복과 충동 조절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깊어지는 집착과 불안정한 정신 상태 속에서 빈센트는 자신의 귀를 자르고 발작을 일으켜 생레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고흐는 결국 깊은 우울에 빠졌고, 삶을 비관하며 자살을 선택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보면, 휘몰아치는 붓터치와 어두운 색감이 그의 내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빈센트는 늘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이루고 싶은 일이 있었다.”

이는 양극성 장애 환자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패턴이다. 조증 상태에서는 엄청난 창작 활동을 하지만, 이후 우울에 빠지면서 삶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고흐에게 예술은 생존의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는 그림을 통해 존재를 증명하려 했고, 감정의 불꽃을 태워버렸다.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과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그걸 억누를 수는 없으니, 터뜨리기보다는 태워버리는 게 나아.”

이러한 강렬한 창조성과 자기표현 욕구는 양극성 장애를 가진 예술가들의 특징 중 하나다.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이 비슷한 정신적 문제를 겪었으며, 그들의 창작물이 병적 에너지의 결과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는 단순한 미치광이가 아니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단순한 불운한 화가가 아니라, 양극성 장애를 가진 예술가로서 자신의 감정과 싸운 인물이었다. 그는 극단적인 조증과 우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그의 고통이 없었다면, 우리는 오늘날과 같은 강렬한 감성의 그림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끝까지 사랑을 갈구했지만, 결국 세상의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다.

“고통이 없었다면, 그의 그림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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