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량한 기후파괴자입니다』.제목부터 아이러니하다. 책의 저자 토마스 브루더만은 환경운동가이자 인간행동과학 전문가다. 이 책은 단순한 환경서가 아니다. 오히려 개인의 심리, 그중에서도 사회나 집단 속에서 인간 심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바탕으로, 왜 사람들이 기후나 환경 문제에 대해 즉각적으로 행동하지 않는지를 다각도로 분석한다.
처음에는 그저 환경 문제를 다룬 책이려니 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이 책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복잡성과 모순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이 정직한 동시에 부정직해 보인다. 그리고 인간은 원래부터 모순적인 존재다. 저자는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왜 개인이 기후나 환경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지를 심리학적으로 풀어낸다.
이 지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피로감을 느꼈다. 인간은 스스로를 합리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그리고 그런 비합리적인 행동을 자기합리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이러한 인간의 모순성과 자기기만은 기후 문제 앞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인간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고, 그 회의감이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기후 문제는 개인의 의지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정치적 결정권자, 이익 대변자, 기업가 등의 구조적인 차원에서 변화와 대처가 병행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개인이 뭘 해야 한다’는 요구 앞에 놓인다. 이러한 상황은 개인으로서 무력함과 좌절감을 느끼게 만들고, 이중의 피로감을 안겨준다.
책을 3분의 1 정도 읽었을 때쯤, 나는 궁금해졌다. 저자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까? 개인과 사회, 국가, 그리고 국제적 이익이 얽힌 복잡한 이슈 속에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까? 그런 궁금증을 안고 마지막 3분의 1을 읽어나갔다.
책에서는 인간의 본성과 심리 구조에 대한 통찰도 다룬다. 인간은 본래 즐거움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려는 존재다. 저자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 문제에 있어서도 인간은 합리적인 선택보다는, 비합리적이고 단기적인 이익에 기반한 선택을 하게 된다.
우리의 결정은 왜곡된 인식, 습관, 사회적 역량, 외부 환경, 세계관, 문화적 특징 등 다양한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경제적 보상과 효율성은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 데 큰 기준이 된다. 결국 우리가 말하는 ‘합리적인 선택’이란 것도 주관적 기대 효용의 극대화에 불과한 셈이다.
인간 심리의 메커니즘은 또 이렇다. 좋은 것은 바로 지금 누리고 싶고, 불편한 것은 나중으로 미룬다. 습관을 바꾸는 것도 하나의 ‘비용’이고, 불확실한 먼 미래보다 눈앞의 현재가 훨씬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어떤 것을 포기하라고 하면, 오히려 그 일을 더 하고 싶어지는 반작용이 일어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점에서 기후나 환경에 대해 자율성이 필요하다는 역설적인 주장을 던진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인간은 프로메테우스보다는, 실패를 통해 배우는 에피메테우스에 가까운 존재가 아닐까? 우리는 미래를 미리 준비하기보다는, 일이 벌어진 뒤에야 겨우 깨닫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문제는, 지구는 한 번 아프고 무너지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지구에는 두 번째 기회가 없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가장 무거운 현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지점에서 더 큰 무기력감을 느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분리수거를 열심히 해도, 그것이 정말로 기후나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수온은 계속 오르고, 날씨와 기온은 내가 어렸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체감되는 변화 앞에서, 점점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사회와 기후에 대한 구체적인 예시들이 등장한다. 보상금을 지불하면 죄책감이 덜어진다거나, 온실가스 배출의 71%가 단 100개의 대기업에서 발생하고, 그 중 3분의 1이 단 20개의 화석연료 제조사에서 나온다는 사실 등이 그렇다. 이런 경제·사회적인 구조는 개인에게 무력감을 안겨준다. 게다가 80%의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본 적도 없는데, 상위 1%가 전 세계 탄소 배출의 50%를 책임지고 있다는 통계는 기후 문제의 불평등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그런 현실을 보며, 나도 문득 생각했다. ‘내가 만약 돈이 많다면, 나 역시 여행을 마다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문제는, 개인의 권리와 책임 사이에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데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문제는 복잡하고, 때로는 해결할 수 없는 난제에 부딪치는 느낌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다.
개인의선택,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넛지
개인의 권리와 의무 사이에는 분명한 기준이 없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환경 문제 앞에서 스스로의 책임을 판단하기 어렵고, 때로는 회피하거나 무력감에 빠진다.
토마스 브루더만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그는 단순히 탄소를 많이 배출한 사람에게 비용을 부과하는 ‘벌금적 방식’보다는, 사람들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넛지(nudge)’ 방식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즉, 직접적인 처벌보다는 작은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 기후친화적인 태도를 자발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 안의 개인, 사회구조 안의 개인이 긍정적인 동기를 느끼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효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후 문제는 ‘같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며,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서로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자발적으로 기후 친화적인 결정을 해나가는 것—그것이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한 조건이 된다.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런 자발적인 동기를 위해 무엇보다 ‘시간의 선형성 안에서 다음 세대와 함께할 수 있는 공동체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내가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지구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다음 세대가 살아갈 공간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래서 교육도 중요하고, 관계도 중요하다. ‘내가 희생해야 하기 때문에 환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감수할 수 있기 때문에’ 환경을 지키는 것이다. 생각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변화는 어쩌면 이런 연대감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선량한 기후파괴자입니다 —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으려합니다
나의 일상은 특별하지 않다. 그 ‘보통의 삶’이 사실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선택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여야한다고 느낀다.
예를 들어,
- 일회용 생리대 대신 생리팬티를 사용하는 것,
- 물티슈 사용을 줄이거나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 필요한 옷만사고, 새 옷을 사는 횟수를 줄이는 것,
- 몸의 자연스러움을 조금씩 받아들이며, 쾌적함이라는기준을 되돌아보는것.
이런 작은 실천들이야말로 내가 직접 선택할 수 있는 변화다. 이제 나는,
내가 사용하는 물건들이 나보다 오래 살아남는 세상을 원하지않는다. 내가 만들어낸 쓰레기들이 내 수명보다 오래 남아, 지구를 더럽히는 것은 점점 더 무겁고 낯설게 느껴진다.온수로 자주 샤워하고, 자주 옷을 갈아입는 일상도 회의감이 든다.
예전에는 덜 갈아입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너무 높은 위생과 쾌적함의 기준에 익숙해져 있다. 그렇지만 다시 적당함과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선량한 기후파괴자입니다』에서 말하듯, 우리는 완벽하기때문에 변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하려는 마음에서 변화는 시작된다. 나는 고다 아야의 『나무』에서 관통하는 주체처럼, “나무가 천천히 사라지듯 자연 안에서 조용히 소멸하는 존재”이고 싶다. 나라는 존재가 남긴 결과가 이 세계에서 너무 큰짐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작은 실천을 고민한다. 그리고 그 고민이, 생각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