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도 훌쩍 넘는 기다림 끝에 알라딘 서점에서 출간된 시드니 스미스(Sydney Smith) 그림, 케이트 비튼(Kate Beaton) 글의 신작 그림책 《레베카(Rebecca)》를 마주했다. 공휴일 도서관의 헛걸음 끝에 겨우 품에 안은 책의 표지 속 여인은 눈부시도록 밝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책장을 덮은 뒤 밀려온 감정은 그 찬란한 표지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마음 한쪽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묵직함으로 가라앉았다. 책이란 저마다 만나는 시기가 따사로이 다가오듯 분명 인연이라는 게 존재하는가 보다. 마침 하필이면 어제, 함께 미술 치료를 공부하던 선생님의 남편 부고 소식을 카톡으로 접한 참이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주변에서 죽음을 마주하는 일이 잦아진다. 그 대상이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지만, 이번 부고 소식은 떠난 그 사람 그 자체보다도 홀로 남겨진 한 여인의 무게 때문에 유독 마음을 아리게 했다. 젊은 날에 홀로 남겨져 앞으로의 인생을 외로이 이어가야 할 그 사람의 캄캄한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한참 아이들을 키우는 시점이기에, 어쩌면 죽음이라는 질문과는 가장 멀리 떨어져 지내며 그것을 깊이 체감하지 못하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그러나 책 속에서 남편을 잃은 채 거센 섬의 바람을 맞으며 아이들을 건사해야 했던 레베카처럼, 그리고 미술 치료를 같이 배우던 그 선생님처럼 우리 주변에는 오늘 하루를 견뎌내야 하는 수많은 레베카들이 존재한다. 저 푸르고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서 그녀가 겪고 있을 마음을 생각하면, 남겨진 이를 위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고 또 그 슬픔의 구덩이에서 혼자 삽질을 하다 묵묵히 털고 나올 때까지 마냥 기다려주는 것 외에는 달리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시간이 더디고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장례식이라는 거창한 의식은 결국 남겨진 산 자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위로의 과정이겠지만, 이 무거운 이별의 순서는 언젠가 나에게도 돌아올 것이다. 나 역시 언젠가는 그 수많은 레베카 중 한 명이 될 터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잘 살아야 할까. 하지만 ‘잘 산다’거나 ‘행복하다’라는 거창한 정의가 레베카의 후손들에게 어떻게 쓰여질지는 솔직히 별로 궁금하지도, 중요하지도 않다. 지금 이 순간을 버텨내는 것조차 충분히 벅차고 힘겨운 일이니까. 이 땅에서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레베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무언가를 애써 증명하며 잘 살아가려 애쓰지 않아도, 그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눈부시다고. 나는 그저 미술 치료를 같이 공부하던 그 선생님이 다시 내게 연락을 건네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말없이 그녀의 따뜻한 손을 마주 잡고 그 길목을 함께 걸어줄 것이다.
이 책을 더 깊이 파고들게 만드는 것은 단연 시드니 스미스의 압도적인 시각적 연출력이다. 예전에 그가 출연했던 유튜브 영상, 특히 《괜찮을 거야(Small in the City)》 작업과 관련된 영상이 문득 떠오른다. 그는 말을 유창하게 잘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이 세상에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오롯이 그림이라는 시각적 언어로 풀어낼 줄 아는 예술가였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말을 번지르르하게 잘하는 사람을 보며 멋지고 대단하다고 느끼곤 하지만, 시드니 스미스는 그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감정과 생각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직조해 낸다. 《바닷가 탄광 마을(Town Is by the Sea)》부터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I Talk Like a River)》, 그리고 이번 《레베카(Rebecca)》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들을 지켜보면 한 작가의 눈부신 예술적 성장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는 끊임없이 그림을 즐기며 재료에 대한 깊은 고민과 물성에 대한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길거리에 핀 꽃의 미세한 그림자 하나를 포착해 내던 그 섬세한 시선이 지금의 《레베카》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이어져 온 것이다. 이토록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작가를 마주한다는 것은 일종의 동경을 불러일으킨다. 전작인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를 통해 예술적 도약을 보여주었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삶의 찬란한 기쁨과 그 이면에 도사린 절망 및 불안을 탁월하게 엮어낸다. 표지 속 젊은 레베카를 비추는 눈부신 빛은 아이러니하게도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인간 삶의 명암을 깊이 있게 예감케 한다.
특히 시드니 스미스는 묘사를 극적으로 생략하거나 최소화하는 방식을 통해 오히려 그림의 행간을 넓히고 여백의 깊이를 더한다. 굳이 인물의 표정을 세밀하게 묘사하지 않아도 배경의 톤과 색감만으로 상황의 절박함을 온전히 전달한다.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레베카가 허겁지겁 바닷가로 내달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쩍 갈라진 얼음 사이로 바닷물이 흐르는 짙은 회색과 청록색, 다크한 바다의 느낌을 아크릴 물감의 텍스처를 살려 거칠게 긁어내듯 표현하고, 레베카의 알 수 없는 뒷모습과 채도를 낮춘 먼발치 섬의 배경을 대비시켜 막막함과 고립감을 극대화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슬픔이 레베카에게 밀려오는 과정을 시각화한 연출은 더욱 인상적이다. 레베카의 귀환 길은 진하고 밀도 있게 그려낸 반면, 그녀의 곁을 맴도는 ‘슬픔’은 물감의 밀도를 대폭 낮춘 옅은 터치로 처리해 이질적이면서도 처연한 외로움을 배가한다.
책의 결말부, 오랜 세월이 흘러 노년이 된 레베카가 자신을 데러러 온 ‘오래된 슬픔’을 오랜 친구처럼 맞이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그 시각적 절제가 절정에 달한다. 주름진 노인의 묵직하고 짙은 손길과, 그 곁에 투명하게 채도를 낮춘 채 존재하듯 말듯 머무는 슬픔의 형상은 명확한 선을 지우는 러프한 표현과 물감을 흩뿌리는 기법(splattering)을 통해 형체 없는 존재의 무게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 낸다. “사랑은 언제나 나를 부르지요. 슬픔은 사랑의 다른 반쪽이니까요”라는 메시지가 그림의 결을 타고 고스란히 가슴에 스며드는 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