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감옥과 승화의 미학

기억의 감옥과 승화의 미학: 슈테판 츠바이크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의 유작 『어제의 세계(Die Welt von Gestern)』는 단순히 한 지식인의 회고록을 넘어, 사라진 문명에 대한 비극적인 증언이자 그 시대의 마지막 목격자가 남긴 기록물이다. “나는 곧 그 어디에도 돌아갈 곳이 없는 텅빈 공허감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한탄하지 않는다. 고향 없는 자야말로 새로운 의미에서 진정 자유로운 것이며…”라고 적었던 그의 고백 이면에는, 고향을 떠나며 쿨한 척했지만 사실은 자신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견뎌내야 했던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 숨어 있다.

츠바이크가 이 책을 집필할 당시, 나치즘의 광기가 유럽을 집어삼키던 망명지에는 그가 참조할 수 있는 방대한 사료나 서재가 없었다. 그는 오직 자신의 ‘기억’에만 의존해 유럽의 황금기를 복원해야 했다. 그는 “우리 기억이라는 것이 어떤 것을 그냥 우연히 보유하고 다른 것은 단지 우연히 상실하는 그런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라고 믿으며 기억을 능동적인 선택의 결과로 보았다. 대니얼 커너먼(Daniel Kahneman)의 ‘절정-대미 이론(Peak-End Rule)’을 빌려보면, 우리의 기억은 가장 강렬했던 ‘절정(Peak)’과 마지막에 느낀 ‘대미(End)’에 의해 결정된다. 츠바이크에게 빈의 황금기는 인생의 정점이자 찬란한 ‘절정’이었고, 고향 빈에서의 마지막 모습은 그의 기억 속에 고정된 인생의 ‘대미’였다. 브라질이라는 망명지의 현실이 아무리 자유로웠단들, 이미 고향 빈에서 인생의 정점과 종결을 경험했던 그에게, 현실은 받아들일 수 없는 공허일 뿐이었다. 그는 이성과 미사여구라는 정교한 성벽 뒤로 숨어, 기억 속의 완벽한 낙원을 박제해 나갔다.

이러한 ‘기억의 감옥’ 속에서 츠바이크가 선택한 것은 역사적 패배를 정신적 승리로 치환하는 작업이었다. 그는 “최초의 희곡 테르지테스 이래로 패배자의 정신적 우월 문제가 언제나 새롭게 나를 열중시켰다”고 말하며, 승리가 주는 영혼의 마비에 맞서 고통을 통해 자신을 갈아 나가는 ‘패배의 정력적인 힘’을 옹호했다. 그에게 글쓰기는 나치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서 물리적으로는 패배했지만, ‘기록’이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고 지적인 복수를 완성하려는 결연한 투쟁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츠바이크가 구현한 상상력의 본질이다. 예술 치료의 선구자인 이디스 크레이머(Edith Kramer)는 “상상력이 환상을 대체한다(Imagination replaces fantasy)”고 강조했다. 츠바이크의 글쓰기는 결코 도피적인 환상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무책임한 공상이 아니라, 뼈아픈 역사의 무게와 현실의 비극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마무리했다. 그는 환상이라는 안개 속으로 숨어버리는 대신, 이디스 크레이머가 말한 진정한 상상력의 칼끝으로 현실을 증언하며 자신을 지탱했다.

한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역시 현실과 단절된 지점에서 자신만의 영토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츠바이크와 궤를 같이한다. 츠바이크에게 단절이 ‘역사적 추방’이었다면, 보르헤스에게는 ‘실명’이라는 생물학적 단절이었다. 츠바이크가 상실한 과거를 보존하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차갑고 정교한 미사여구로 덮어버리는 ‘방어적 승화(Defensive Sublimation)’를 택했다면, 보르헤스는 결핍을 지적 유희와 상상력의 도구로 삼아 내면의 도서관을 무한히 확장하는 ‘유희적 승화(Playful Sublimation)’를 택했다. 츠바이크의 글이 판타지가 아닌 이유는 철저히 실존했던 ‘유럽적 휴머니즘’이라는 현실의 무게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슈테판 츠바이크는 현실의 중력으로부터 추방당한 자였다. 그는 그 추방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 빈이라는 기억의 감옥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고, 그 안에서 모든 인간적 나약함과 찌질함을 거세한 완벽한 문장을 남겼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말한 “원초아가 있는 곳에 자아가 있게 하라(Wo Es war, soll Ich werden)”는 명제처럼, 원초아(Id)가 자아(Ego)와 스며들어 통합을 이루는 건강한 삶과 달리, 츠바이크는 자아를 방패 삼아 인간의 본능적이고 고통스러운 실체를 철저히 통제했다. 그는 기억이라는 성벽을 쌓아 올림으로써 물리적 패배를 정신적 승리로 바꾸어 놓았지만, 그 대가로 타인과 살을 맞대는 ‘리베(Lieben, 사랑할 능력)’의 온기마저 상실하고 말았다.

그의 유작 『어제의 세계』는 현실에서 단절된 지점이 역설적으로 시간을 초월한 증언이 된 사례다. 츠바이크에게 글쓰기는 고통을 치유하는 과정이기보다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였다. 그러나 그 건조함과 결핍 속에서도, 이디스 크레이머의 통찰처럼 환상이 아닌 현실 기반의 상상력으로 자신의 세계를 끝까지 마무리하고자 했던 그의 치열한 정신만큼은 분명하다. 고립과 상실의 끝에서 끝내 자신을 기록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한 인간, 그 처절하고도 숭고한 존재의 증명 앞에 비로소 한 인간으로서 깊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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