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누구나 남들에게는 말 못 할 ‘나만의 돌’ 하나쯤은 품고 살지 않을까.
그림책 테라피 수업에서 송미경 작가의 『돌 씹어 먹는 아이』를 읽었다. 책 속 아이는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돌’을 먹으며 위안을 얻는다. 선생님은 이 책을 통해 ‘다름’을 수용하는 태도에 대해 관계에 대한 이해를 이야기하셨다.. 수업 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에게 돌은 무엇인가?”
처음에는 인정 욕구 같은 추상적인 답이 떠올랐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답은 ‘색채와 재질감’에 있었다. 내 책장 아래 서랍에는 오일 파스텔, 수채화 물감, 아크릴 물감 등이 가득 차 있다. 다양한 색만 봐도 충만감이 밀려온다. 주변에서는 미술치료 수업에 “왜 굳이 그 정도까지 세분화된 재료를 고집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전문가나 입시 미술에서 사용하는 재료들의 미세한 발색이나 질감 차이는 일반적인 눈에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한 끗 차이’를 구별하고 소유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창의적 활동이다.
이런 재료에 대한 집착의 뿌리는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1학년 때, 36색 크레파스를 갖고 싶어 처음으로 엄마에게 사달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내 요구를 거절 당했고, 몇 년후, 미술 학원을 다니던 동생에게만 36색 크레파스를 사주셨다. 그 당시 나는 이미 크레파스가 필요한 시기를 지나버린 상태였다.
그 사건은 유년 시절의 결핍으로 남았다. 내가 좋아하는 대상을 표현하고 그것을 인정받고 싶었던 욕구가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만화부를 활동하거나 입시 미술을 할 때, 일반 학용품과 전문 화구의 질감 차이를 예민하게 감지했던 것은 어쩌면 그 결핍을 해소하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책에는 돌산을 여행하다가 자신과 똑같이 돌을 씹어 먹는 친구들을 만나 교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부분을 보며, 나 또한 어릴 적 내가 먹던 ‘돌’을 함께 나누던 친구가 떠올랐다.
그 닫힌 문을 열어준 것이 바로 초등학교 고학년 때 만난 친구였다. 가족에게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나와 똑같이 그림을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나는 처음으로 정서적 충만감을 느꼈다. 우리는 서로의 도구와 그림을 공유하며 지지했고, 그것은 가족 관계에서 얻지 못한 갈증을 채워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돌산을 여행하던 아이가 자신과 같은 이를 만나 비로소 안도했듯, 그 친구와 함께했던 시간은 내가 나 자신을 긍정할 수 있게 해준 시간이었다.
성인이 된 지금, 나는 내가 원하던 그 색깔의 도구들을 내 서랍에 자유롭게 채워두었다. 어릴 적에는 가질 수 없었던 것들을 이제는 내 힘으로 확보할 수 있는 어른이 된 것이다. 나에게 이 재료들은 단순한 소모품이 아니라, 내 기질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자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다.
어린 시절의 나는 크레파스를 사달라고 말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지만, 이제는 나의 취향을 명확히 드러내고 그것을 이용해 타인을 돕는 일을 한다. 가족들에게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고 함께 식사를 나누며 치유했던 책 속 아이들처럼, 나 역시 내 안의 고유한 취향을 수용함으로써 스스로를 돌보고 있다.
나에게 돌은 단순한 허영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창의적 정체성이다. 나는 여전히 색을 사랑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당당하게 선택하는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다.
